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인이 돈을 사용하는 방식과 비그리스도인들이 돈을 사용하는 방식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깨지고, 혼란에 빠진 세 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라는 우선적 임무를 받은 집단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 집단은 공허한 생활방식에 맞서 생명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D 타입은 패배한 믿음(Defeated faith)을 대표한다. D 타입의 문화적 그리스도인들은 패배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자기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이들의 생활방식과 거의 차이가 없다. D 타입의 문화적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문화적 그리스도인과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차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이런 범주에 속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정신 차리게 하시기 전에는 나도 이 범주에 집적거렸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신앙의 삶에서 서로 정죄하고 다투고 싸우며, 율법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예배의 본질을 통해 예배자의 마음과 자세를 회복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영적인 쉼이다.
교회는 불러 모아야 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대면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대면했던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또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풍랑이 몰아쳐도 상류로 항해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에 맞서 거꾸로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방향이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주를 믿고 섬기는 이들이 서로 나누며 기뻐하도록 주신 화목제물의 성격을 지닌다. 주께서 나누신 유월절 만찬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본문인 요한복음 13장 역시 서로 섬길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13-14절)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라는 새 계명으로 마무리된다. 주께서는 그 몸을 번제물로 주셔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지 본이 되셨고, 성만찬의 화목제를 통해 그 몸에 참여할 때마다 내 곁에 함께 있는 형제자매를 돌아보고 함께 즐거워하고 나누도록 하셨다.
죄의 돌이킴은 죄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시작하며, 그 죄가 미친 이웃에 대한 회복을 한 연후에야 제사를 통해 공식 사죄의 절차를 밟는다. 참으로 형제에게 잘못한 자는 제단에 예물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가서 그 형제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한다(마 5:23-24). 속건제가 주는 교훈은 이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형제를 향한 사랑과 회복이 먼저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