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택 가격 상승의 주 원인은 낮은 금리와 (이로 인한) 유동성 증가다. 주택 금융 정책 방향은 '단계적 금리 인상'이 돼야 한다."(국토연구원·2월3일)
"금리 인하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금융 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 통화 정책 방안을 찾아야 한다."(국회예산정책처·1월25일)
"금리 인하 등 경제 정책이 실물 경기 회복에는 기여하지 못한 채 통화량을 빠르게 늘려 자산 가격만 상승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된다."(한국개발연구원(KDI)·2020년 11월9일)
국책 연구원 등 경제학계가 정부의 저금리 정책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낮춘 금리가 집값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그동안 "날뛰는 집값을 잡겠다"며 세제 강화·공급 확대 등 온갖 대책을 25번이나 내놨지만, 이런 간접 규제로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금리 인상을 고려할 때가 됐다는 제언이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연구원은 지난 3일 제34호 국토 이슈 리포트(글로벌 주택 가격 상승기의 금리 정책과 주택 금융 시장 체질 개선 방향)를 통해 "한국 시·도별 버블 위험을 추정한 결과 일부 지역은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는 국토연이 주택 시장을 대표하는 5가지 변수인 ▲가구 소득 대비 집값 ▲임대료 대비 집값 ▲경제 성장률(GDP) 대비 모기지 비중 ▲GDP 대비 건설 비중 ▲지방 대비 도시 집값 상대 가격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결과다.
그 결과 지난해 1~3분기 서울·세종이 각각 1.54로 '버블 위험'(1.5 이상) 단계에 해당했다. 서울·세종은 2018년 각각 1.33·0.86이었지만, 최근 2년 새 급등세를 이어가 버블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경기(1.49)·인천(1.05)·광주(0.87)·대전(0.77)·전남(0.73)·부산(0.67)·대구(0.65)는 '고평가'(0.5~1.5) 단계다. 특히 경기는 2018년 0.17, 인천은 마이너스(-) 0.13으로 '적정 수준'(-0.5~0.5)이었지만, 2년 사이 지수가 급등했다. 경기의 경우 0.01만 더 오르면 버블 위험 단계에 진입하는 상황이다.
국토연은 "독일 뮌헨(2.35)·캐나다 토론토(1.96)·홍콩(1.79) 등 다른 국가에도 버블 위험 지역이 꾸준히 존재한다"면서 "세계 집값 상승 추세에 비해 한국은 아직 변동 폭이 크지 않지만, 추세를 보면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시중 유동성 증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총통화량(M2)은 2019년 한 해 동안에만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 M2 증가 폭은 2020년 1분기 8.1%, 2분기 9.7%로 더 커졌다.
앞서 한은은 2019~2020년 4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1.75%에서 0.5%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도 2020년에만 추가경정예산(추경)을 3월17일 4차례(11조7000억원·4월30일 12조2000억원·7월3일 35조1000억원·9월22일 7조8000억원) 편성했다.
이는 적정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유지해 디플레이션(Deflation·물가가 하락해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경제 전반의 수요(총수요)를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이 물가 상승을 위한 민간 소비 촉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국회예정처가 2000년 1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를 조사한 결과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전기 콜 금리(은행 등 금융사끼리 단기 자금을 주고받을 때 쓰는 이자율) 변동은 민간 소비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세계 금융 위기 이전까지는 전기 콜 금리를 1%포인트(p) 인하하면 민간 소비가 0.008% 증가했지만, 그 이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당국이 직접 돈을 푸는 확장 재정 정책은 집값의 단기적 상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정부의 통화 공급 증가는 제조업 생산을 유의미하게 증대시켰지만, 집값 또한 빠르게 밀어 올렸다.
KDI의 연구에 따르면 정책적 통화 공급 충격에 의해 통화량이 1.0% 증가할 때 집값은 4분기에 걸쳐 0.9%가량 상승했다. 반면 제조업·서비스업 등 경제 전체의 산출물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파악하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8분기에 걸쳐 0.5% 오르는 데 그쳤다. 통화량 증가는 집값에 2배가량 빠르고, 크게 여파를 미친 셈이다.
이태리 국토연 부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경기 회복에 따른 물가 안정과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면서 "단계적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 금융 소비자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을 설정해 주택 시장 변동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