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연구소
미국 하와이에 있는 반얀나무. ©Brian Uhreen

[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인도가 원산지인 반얀나무(bayan tree)는 사방으로 뻗어난 가지에서 자란 기근(공기뿌리)들이 땅에 박히면서 뿌리가 계속 많아지고, 줄기도 굵어지는 나무다. '벵골보리수'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16m까지 자라고 사방으로 뻗어난 가지에서 퍼진 잎 둘레가 400m나 되는 것도 있다.

"반얀나무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자리지 않는다.(Nothing grows under a bayan tree, 1994:173)"

인도 선교사였던 선교인류학자 폴 히버트는 일찍이 반얀나무의 특성을 인용하여 선교사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이을 현지인 리더들을 키우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얀나무는 엄청나게 크지만, 그 울창한 잎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나무가 죽은 후에도 그 땅에서는 잎을 내지 못하고 싹도 곧 말라 죽고 마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봐도,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본다'는 말이 있다. 뛰어난 인물을 주변에 둔 사람은 그의 가르침과 관심, 보호와 혜택을 받으며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히 큰 사람의 추종자, 지지자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선교지에서 낯선 이방인에 의해서가 아닌, 결국은 현지인 주도로 기독교가 뿌리 깊게 내려 영향력과 자생력을 키워가려면 선교사는 적절한 시기에 현지인에게 리더십을 이양해야 한다. 진정 선교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여 자신의 자리를 현지인들에게 물려주는 선교사들의 큰 리더십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한 리더십을 보고 배운 현지인 리더들이 그 나라뿐 아니라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에 나가 또다시 크고 아름답게 사역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호진 박사
미얀마장로교신학교 학장, 인도차이나연구소 소장 전호진 박사

최근 태국 치앙마이 인도차이나연구소(가칭)는 라트비아 신성주 선교사(선교학 박사)를 초청해 '선교지 리더십과 선교이양'(Cross-cultural Leadership Succession)을 주제로 제3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미얀마장로교신학교 학장이자 인도차이나연구소 소장 전호진 박사는 본지에 "각국에서 한국선교 역사가 대체로 20년이 넘는데, 리더십 이양이 안 된 채 한국 선교사 주도로 사역해나가면서 현지교회로부터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며 "타문화 선교리더십 이양은 선교지에서 꼭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라고 행사 취지를 전했다.

한국선교, 일부 지역서 서구 제국주의 선교 형태서 벗어나야

전 KPM 연구훈련원 부원장을 역임한 신성주 선교사는 강의에 앞서 폴 히버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선교사들이 자기 사역과 리더십은 극대화해가지만, 그들이 지나간 곳에 현지인 리더들이 등장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했다"며 "이는 현지인들이 모두 잘 '추종하는 자'(followers)로만 훈련되었기 때문인데, 선교지에 하나님 나라가 진정 뿌리내리고 흥왕하기 원하면 선교사들을 대체할 현지인 리더들(national leaders)을 길러내어야 하고, 그들에게 리더십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성주 선교사는 타문화 선교리더십 이양에 대해서는 "타문화권에서 선교사가 해산하는 수고를 통해 양육, 훈련시킨 현지인 리더에게 사역 리더십을 완전히 이양해주고, 선교사는 새로운 사역을 개척해나감으로써 필드 복음화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선교철학이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한국에서 지역교회를 개척해 목회하며 은퇴할 때까지 계속 사역하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선교사는 목회자가 아니며, '필드의 복음화'를 위해 보내진 '변화의 주체자'"라며 "선교는 그 민족과 그들의 토착교회를 세워주기 위해 존재하며, 일정한 역할을 마치면 현지인 리더들에게 사역 리더십을 이양하고 선교사는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양 장대현교회도 선교사가 개척했지만 결국 선교사들이 배출한 현지인 리더인 길선주 목사에 의해서 평양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선교사가 현지 리더들이 아무리 성숙해도 선교사 자신의 동의나 허락 없이 스스로 판단해서 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신 선교사는 지적했다. "한국선교사가 가장 많은 인도차이나와 동남아 지역 한인선교는 마치 한국교회와 연계해 현지를 종교적으로 점령(occupying)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면서 "이를 21세기형 한국판 제국주의 선교 형태"라고 꼬집었다. 19세기 서구의 아프리카 선교의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서구 선교사들은 미션 스테이션(Mission Station) 중심의 선교를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미션 센터(Mission Center)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다"며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에서 한국선교는 '성장 패러다임'에 함몰되어 '더 크게 더 크게' 패러다임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실 현지인과 현지 교회의 존재를 무시하는 영적 제국주의(spiritual imperialism)이며, 선교지를 영적 식민지(spiritual colony)로 삼는 가장 좋지 않은 선교 패러다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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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주 라트비아 선교사. ©기독일보DB

신성주 선교사는 10여 년 전 태국 북부의 한국 선교사 26명과 심층인터뷰를 했던 경험도 전했다. 당시 26명의 한국 선교사는 158명의 현지인 사역자와 동역하는데, 그중 13명만 신학교에 다니기 이전부터 선교사들에 의해 양육된 자였고 그 외는 모두 신학교를 졸업한 사역자들을 고용해 함께 사역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13명 중 2명만 자기 사역의 리더십을 완전히 물려받고 자립하고 있었다. 신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가 그 도시에서 사역한 지 20년 만에 현지인 리더로의 효과적인 리더십 이양은 단 2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더십 이양이 잘 이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먼저 현지인들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선교사들이 현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과업이며, 사실 선교사들의 자질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의 과도한 성과주의 기대와 간섭주의(paternalism)는 선교사들로 하여금 보여주는 선교를 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고, 여기에는 한국선교훈련원들의 짧은 역사로 인한 미숙한 선교훈련도 한몫을 한다"며 "훈련원에는 이론과 실제를 제대로 구비한 경험 있는 훈련가들이 태부족이고, 리더십 이양의 철학, 원리, 실제를 다루는 잘 고안된 훈련 커리큘럼들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파송단체들의 이양 철학 부족, 한국교회의 성장 중심(growth-centered), 돈 중심(money-centered) 선교, 선교사들의 자기 영웅주의(missionary self-heroism) 등 복잡한 원인들이 얽혀 있었다"며 "현실적으로 보건대, 자기 사역을 현지인에게 이양할 수 있는 선교사는 거의 없는 듯했고, 은퇴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까지라도 사역 리더십을 붙들고 있을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현지인으로의 리더십 이양은 선택 아닌 필수

이 모든 폐단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이양 패러다임'(succession-paradigm)이라고 신 선교사는 주장했다. "이양 패러다임은 돈 선교를 막아주고, 건물보다는 사람에 투자하게 해주며 선교사의 개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도전하고 선교사가 한 곳에 정주하여 '자기왕국'을 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며 "뿐만 아니라 이양 패러다임 선교는 한국교회 재정을 보호해 주고, 중복투자를 막아주며 한층 더 성숙한 전략적, 선교학적, 성경적 선교를 하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했다.

'타문화 선교리더십 이양'이라는 과업의 합당한 이론적 근거에 대해 그는 4가지로 소개했다. 첫째, 잘 훈련된 현지인에게로의 리더십 이양은 선교리더십의 토착화를 통해 '상황화'라는 선교학적 큰 과제를 이행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둘째, 사역의 우선순위, 목표, 방법론, 전략을 선택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가치, 규범, 원칙인 '타문화 사역철학'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문화 사역철학은 주님의 지상명령 수행의 방향과 방법이 하나되게 하는 것"이라며 "헨리 밴, 루푸스 앤더슨의 토착화 3자 원리, '선교(사)의 안락사' 개념은 모든 선교사의 사역철학이 되어야 하고, 톰 스테판의 '단계적 철수 모델'은 그 철학을 실현하도록 돕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조직의 리더십 이론'을 든 그는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운영되면서 또한 사람들의 조직으로 구성돼 운영되는 유기적 조직체"라며 "조직이 늘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는 것처럼 선교지 교회나 신학교 등도 현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문화권에서 이상적인 조직은 현지화된 조직"이라며 "선교사는 언어와 문화가 아무리 적응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현지인이 아니므로 잘 훈련된 현지인 리더로의 리더십 이양은 필수이며 선택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타문화 선교리더십으로 이양해야 하는 마지막 이론적 근거는 '성경적 기초'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 신정국 건설의 비전을 전수하시고 다윗, 솔로몬으로 성전건축의 비전을 이양하셨으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교회 건설과 모든 족속의 제자화 비전을 전수하시고 리더십을 이양하셨다"며 "예수님이 떠나가지 않으면 사도들의 시대가 도래하지 못하는 것처럼 선교사가 떠나가지 않으면 현지인들의 시대가 오지 못한다"며 민수기 27장 18~29절은 리더십 이양의 성경적 원리를 잘 가르쳐준다고 설명했다.

 

인도차이나연구소
(표 1) 10개의 과업을 가진 4단계 이양 모델 ©인도차이나연구소(가칭)

 

 타문화 선교리더십 이양 측정 원리와 모델

아울러 효과적인 타문화 선교리더십 이양을 측정하기 위해 '8대 원리'와 '10개 과업'을 가진 4단계 모델(신성주, 타문화선교리더십, 2009)을 소개한 그는 "이 모델은 파송기관, 훈련원, 필드선교부, 사역팀과 팀원들이 시스템(systemic)적으로 하나가 되어 시행할 때 효과적인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효과적인 타문화선교 리더십 이양의 8대 원리'는 ▲우발적 교체가 아니라 잘 준비된 현지인 리더에게로 전략적 계획에 따라 이양 ▲기관(조직)의 존재 목적이 선교사의 복지와 안정보다 더 우선함 ▲문화적으로 더 적합한 사역이 되게 하여 선교지 교회의 지속적 발전과 사역의 진보를 위함 ▲변화와 연속의 조화 ▲현지인 리더는 선교사에 의해 양육, 훈련되어 내부로부터 준비된 자 ▲비전과 철학이 공유된 리더십 이양 ▲파워를 물려준 리더십 이양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는 자기완성으로의 리더십 이양 등이다. 또 '10개의 과업을 가진 4단계 이양 모델'의 4단계는 '4Ps'(Perceiving-Preparing-Passing-Phasing out)이며, 각 단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10개 과업이 있다고 말했다. 이 모델의 목적은 리더십의 토착화를 통해 타문화 사역을 현지 문화에 더 적합하게 하는 '문화적 상황화'와 동시에 주어진 선교지 혹은 그 민족 전체의 복음화를 위해 '사역의 신속한 배가'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신성주 선교사는 "한국선교는 속히 이양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한 곳에서 사역을 시작해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더 많은 일을 벌이며 자기 사역을 확장하려는 성장 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선교지를 종교적으로 점령하는 선교를 탈피하며 선교지의 진정한 복음화를 위해 훈련된 현지인들에게 리더십을 속히 이양하고 새 사역에 도전함으로써 사역을 배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마디로 이 길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불렀다. 선교사가 수고하여 일군 사역지를 내주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힘들지만, 한국선교사와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신성주 선교사는 "오늘날 동남아 곳곳에서 한국선교와 한국선교사들을 향해 '돈만 주고 떠나라!'는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는데, 1960~70년대 아프리카 교회들이 서구 선교사들에게 요구했던 선교 중지(Mission Moratorium)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양 패러다임 선교를 하는 것은 '다 이루었다'며 떠나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리더십 완성의 길이며, 선교로 인해 파생되는 거의 모든 부정적 폐단들이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첩경이자 선교를 더 선교되게 하는 아름다운 선교사의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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