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평창동에 위치한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최근 ‘한국 정치의 새길, 새로운 틀 – 정당정치의 개혁 과제’라는 주제로 대화모임을 열었다. 첫 번째로 서복경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민주정치 30년의 경험과 한국 정당정치의 현 주소’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현재 한국 정당 정치의 3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당 없는 개헌 논의, 집권당 없는 국회, 정당 없는 국회가 바로 그가 지적한 3가지 문제점이다.
먼저 서복경 교수는 개헌에 대한 각 정당들의 정책 실행을 지적했다. 그는 “2013년부터 모든 원내 정당들은 헌법 각론에 대한 간헐적 입장만 내놓았을 뿐, 헌법 130개 조항 전체에 걸친 개헌안은 제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는 “각 정당들은 개헌의 구체적 내용보다 ‘개헌 추진’에만 집중했다”면서 “대한민국 정치경제공동체의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는 문제인 만큼 구체적 개헌안을 거론하는 게 필요했다”고 했다.
또 그는 “일각에선 ‘국민참여에 의한 개헌’을 주장했다”며 “공적 공간에서 개헌이 숙고되고 합의되는 과정 중 하나로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공론장에서 의견을 수렴해 개헌안을 내놓아야 할 정당의 책임 면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꼬집었다. 즉, 그는 “대의민주제의 정당, 특히 원내 정당의 역할은 5천만의 각기 다른 쟁점을 공론화 과정에서 몇 가지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압축해 정책으로 입안하는 것”이라며 “적어도 2012년 대선 이후 개헌논의에서 정당들에게 이런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대선 및 2016년 총선에서 제안한 선거제도 개편안은 아직도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자유한국당도 당론으로 내세운 ‘도농복합선거구제에 의한 지역 선출제’도 합의된 바가 아직 없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그는 “최근 두 거대 정당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주장하는 야 3당에 대해 ‘의석을 더 얻기 위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던” 최근 일을 들며, “정당은 다른 정당에 대해 비판할 자유는 있지만, 그건 자기 당의 입장을 표명한 후에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정당들은 집단적 당론을 규합할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하고, 나아가 당의 정체성도 모호하다”며 당론과 엇박자인 대선 후보들의 행보를 지적했다. 예로, 그는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내세웠지만, 새누리당의 오랜 정체성과 대척에 있음에도 반대하거나 어떤 의의제기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그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공약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은 정책내용에 대한 구체화나 공론화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에 대해 부분적으로 방어만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는 “한국 정당들은 국가적 의제에 대한 공론화 책임을 망각한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집권당 없는 국회를 말하면서 ‘캠프 정부’의 관행을 꼬집었다. 대통령 소속 정당과 대선 캠프 간 엇박자를 놓고, 그는 “결국 대통령 후보와 그의 캠프가 공약을 만들면, 소속 정당은 이 정책에 대한 집단적 동의 절차 없이 대선공약이 그대로 발표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대선후보가 당선이 되면 결국 캠프 인맥이 주요 임명공직을 차지한다”며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공직 배분, 선거 공천에 있어 집권당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는 문제점을 또한 이야기 했다.
때문에,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국정운영의 책임을 공유하는 형태의 집권당이 아니”라며 “집권당 안에서 캠프 인맥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권력 구조는 갈등을 부추겨, 정책 실행의 에너지를 갉아 먹는다”고 일갈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의 집권당 내부의 다음 대선주자는 ‘대통령의 집권당’이기를 부인할 정도로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된다”며 “결국 전임 대통령 지지층은 부동층으로 빠져 나가고, 다음 대선 후보는 차별화 전략을 위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비판했다. 집권당의 정체성에 맞춘 청와대의 지속적인 정책 실행이 부재한 정당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한 셈이다.
적어도 '대통령의 집권당'이 옅어진 정치 현실에서, ‘정당 없는 국회’ 또한 정당 정치 개혁의 한 과제라고 서복경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국회의원 1인당 처리법률안은 10배나 늘어났다”며 “그러나 이를 놓고 국회 정치 능력의 향상이라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일례로, 그는 한국의 18대 국회와 비슷한 시기의 독일과 미국 의원 1인당 처리 법률안을 비교하며, “독일 의원은 1.5건, 미국 의원 3.5건, 한국의원은 12.9건”이라고 밝혔다. 또 “위원회 중심제인 미국을 비교하더라도, 월등히 높은 수치”라며 “5천만 국민의 생계가 달린 입법과정인 만큼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효율성 잣대로 평가 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직전 선거에서 당론으로 공약했고 특정 시점 의원총회 등을 통해 당론으로 결정한 의안들에 대해서, 같은 당에서 동일내용을 담은 다수 법안들이 쏟아지는 행태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의제는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적으로 심의해야 하며, 이를 당론으로 조정 가능한 정책조정기구를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시기에 대동소이한 개정안들을 동일 정당 소속의원들이 쏟아내는 행태를 적극 조정할 수 있다”며 “국회는 더 중요한 의안을 심의하는 데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그는 “국회의원들은 입법활동에 있어 정당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며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공천 경쟁과정에서 '각자도생'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정치 현실”을 지적했다. 이에 그는 “최소한 선거에서 의원들의 개별 의정 활동보다 정당에 대한 평가기준이 먼저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정당이 내세운 공약을 중심으로 의원들의 집단 의정활동이 활발해져, 개별 의정활동을 둘러싼 유인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다수 유권자들이 제도정치에 철수해버리는 대의정치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는 다수 유권자들이 제도정치에서 철수했을 때 발생되는 문제”라며 “이럴 경우, 정부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 구조로 흘러 갈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여 그는 “대의정치가 유권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기존 정당 정책에 만족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결사할 권리 제공이 필요하다”며 “지방선거나 지방정부 참여를 통해 제도적 공간을 마련함으로, 전국적 정당과 연대하는 접점 마련”을 제안했다.
나아가 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결사의 자유를 좀더 확장하는 정당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일례로, 그는 “원내 정당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모금을 차단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을 제시했다. 하여, 그는 “선거운동인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이 아닌 정치활동을 구분함으로, 원내정당 소속 정치인 외의 시민들에게도 정치적 공간을 열어두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토론을 위한 대화 모임도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법은 1962년부터 출발해, 기본적으로 국가중심의 정당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서독 정당법에 명시된 사항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이라며 “시민사회가 국가 정책 입안에 중요한 통로로, 시민 정치 교육을 핵심 사항으로 한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보다 폭넓은 의사형성을 위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의민주제 차원의 정당법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도 덧붙였다. 그는 “국회가 문제다라는 정부 대 국회 대결구도는 반정치의 대표적 현상”이라며 “정부가 뭔가 일을 추진 하려면, 당연히 정당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정부 대 국회가 아니라, 집권세력과 반대세력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장으로서 국회가 설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번 대화 모임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도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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