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이라는 기술을 통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인버전’이란 자연계의 기본 원리인 열역학 제2법칙을 역전시킴으로써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재생하듯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가상의 기술인데, 영화는 이러한 창의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영화에는 물리학의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며 각 장면들은 대체로 시간의 흐름이나 전후관계를 염두에 두고 봐야 하기 때문에 관객으로서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시간의 법칙을 거슬러서 과거, 현재, 미래를 조종한다는 점에서는 소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종전의 영화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입니다. <테넷> 이전에도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은 너무나 많았는데요. 주인공들이 시간을 어떻게 조종하고 또 어떻게 시간의 흐름에 개입하는지에 따라서 ‘타임슬립’, ‘타임루프’, ‘타임워프’, ‘타임리프’ 이런 식의 용어를 달아서 하위장르를 구분 짓기도 합니다.
영화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에서 대부분 주인공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서 과거에 영향을 주거나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현재를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시간여행 서사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빽투더퓨처> 시리즈는 제목부터 직설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이야기라는 걸 밝히지만 내용의 주된 축은 과거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는 미래에서 온 무시무시한 적이 등장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마찬가지이고, 과거의 특정 시간대로 끼어 들어가서 이제 곧 일어날 대형 사고를 미리 방지한다는 <소스 코드>(2011)도 그러합니다. <루퍼>(2012)의 주인공은 청부살인업자인데 그가 죽여야 하는 대상은 30년 뒤 미래에서 돌아온 바로 자신입니다. 미래에서 온 나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30년 전의 자신을 찾아온 것이죠. (2018)은 애인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은 천재 물리학도가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연애 기간 중 후회가 되는 순간들로 돌아가 좌충우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안에 담긴 공통되는 소재는 바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간여행 영화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현재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에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까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에 대한 불만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도 갖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조종하거나 통제하고 싶어 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이 공상과학적인 상상력과 만나면 재미있는 시간여행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시간 통제에 대한 판타지는 늘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욥은 갑자기 일어난 천재지변으로 전 재산을 잃고 자녀들까지 모두 죽어버리며 자신은 심각한 병에 걸려 버립니다(욥 1:13-2:7).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 욥은 차라리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절규합니다(욥 3:1-26). 훗날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변 사람들의 배신과 위협으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되자 욥의 외침을 인용해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예레미야 20:17).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긴 가룟 유다는 스승 예수가 죽게 되자 죄책감 때문인지 자살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진술합니다(마태복음 27:3). 이 말은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처절하게 후회했음을 암시합니다. 이렇듯 성경의 여러 인물들도 아마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과거를 복기하기 마련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 끼우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여행 영화들은 대체로 현재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라고 넌지시 가르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지금 내 선택이 최선의 것이 되게 하라고 말하지요.
복음서에 기록된 잔치의 비유에서 초대받은 이들은 여러 핑계를 대면서 초대를 거절합니다(마태복음 22:1-10, 누가복음 14:16-24). 일견 나름대로 거절한 이유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지혜롭게 판단해야 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현재의 초청에 응해야 했던 것이죠.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초청을 받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그 기회를 외면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시간 이동을 다룬 영화들 중 소위 ‘타임 루프’를 다룬 영화들은 무한 반복되는 시간 안에 주인공만 갇힌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같은 날을 반복적으로 맞이합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에서 전쟁터에 나간 주인공은 계속, 반복적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분명히 죽었는데 눈을 떠 보면 살아 있고 시간은 다시 반복되지요. 이 점은 <사랑의 블랙홀>(1993)이나 <해피 데스데이>(2017)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임 루프’ 영화들은 타종교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윤회(輪回)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윤회 사상이란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죽게 되면 다시 또 태어나기를 반복한다는 사고방식으로서 타임 루프 영화와 맞닿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의 영혼은 생전의 신앙에 따라 심판 여부를 결정받게 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 두 번째 생을 맞이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 것이죠. 만약 두 번째 인생이 주어진다면 첫 번째 인생은 불신앙자로 마음껏 살다가 두 번째 인생에서 참회하며 신앙인의 삶을 살면 된다는 잘못된 주장도 성립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한 번 죽은 영들에게도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히브리서 9:27). 게다가 만일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태복음 28:19-20)는 명령을 주셨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시간은 직선형입니다. 죽음 이후에 새로운, 추가적인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출애굽 공동체에게 열어놓으신 선택의 여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복’과 ‘저주’라는 극명하게 반대되는 것이었죠(신명기 11:26-28).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도자 여호수아는 선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호와를 섬길 것인지 다른 신을 섬길 것인지 ‘지금’ 선택하라고 촉구한 것이죠(여호수아 24:15).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십자가 형별이란 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은 능력을 사용하셔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역행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죠. 게다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는 거의 대부분 ‘촉박함’을 전제로 합니다. 흘러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일 뿐, 무한정의 것이 아닙니다.
<어바웃 타임>(2013)의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자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합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터지면서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꼬이는 사건들을 통해서 현재에 충실하라는 소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니까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죠. 이렇듯 시간여행을 다룬 서사가 ‘현재’에 주목하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흘러가고 있으며 붙잡을 수도 없기에 우리는 ‘지금’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흥밋거리가 될 겁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현재의 내 삶을 근사하게 바꿔 놓거나 불행의 씨앗을 제거하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뛰어 들어가 내 삶의 결과를 미리 알아낸다는 것은 매력적인 이야깃거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여행 소재는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걸어 옵니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말이지요.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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