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야의 탄생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와 태양계를 창조하신 크고 위대하고 장엄하시며, 영광의 빛으로 가득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력으로도 볼 수 있게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친히 아기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아들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는 인간의 언어로 더 이상 감히 다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롭고 놀라운 이 기적 같은 사건이기에 ‘성육신’이라고 표현할 뿐이었다.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현현 예슈아! 바로 그분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큰 비밀이며 이스라엘이 아브라함때부터 예후다 백성들이 수천 년 대대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바로 그 ‘하마쉬앟’ 본인이시다.
조하놐 – 하쉠 예슈아: 신약이 본 이스라엘
저에게 삶은 도전입니다.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정신적인 문제를 인정하며 제 삶을 살 수 있는 것,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통념을 깨고 사업가로서 도전하는 것, 회사를 뺏기고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제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입니다. 진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온갖 얽힌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죄와 관습과 습관과 기대감과 사회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나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저는 진짜 나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해주시고 진짜 저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니까요. 이 삶이 쉽지는 않지만 매일 매일 도전하는 것이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릴지, 무엇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무엇이 튀어나오든 제게는 의미 있는 도전이니까요.
솔리데오 - 모든 순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생명을 품은 한 알의 진주알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초록의 수평선은 투명한 생명체를 품고 환대하는 엄마의 가슴이고, 사랑의 넓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사랑은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 전달된다. 사랑은 부사나 형용사가 아니다. 사랑은 동사다. 동사는 자신을 소진하고 희생한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은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띠 같고 날마다 도돌이표를 찍는 일상이다. 하지만 동일하게 돌아가는 나사못이 상승하듯 어린 자녀들은 생동감 넘치게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중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피곤함도 다 잊은 채 또다시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어머니가 되어 간다. 이처럼 세월의 침식과 풍화작용을 견디어 낸 노년의 삶, 이제 창조주께서 허락하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려나? 누군가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내일의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Well-Aging and Well Dying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 이런 삶이면 좋겠다.
신철범 – 네모 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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