맣할 수 없는 영광
도서 「말할 수 없는 영광」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는 어느 정도의 피상성이 존재합니다. 거기에 타락한 죄성이 결합 되면 하나님을 내 삶의 수호신 정도로 생각하고, 믿음과 기도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인 줄로 여기는 무속적 경향들이 생깁니다. 열심히 믿고 잘 믿으면 어려움은 적어지고 좋은 일만 생긴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다 그런 오해의 일종입니다. 신자의 일생은 이런 우리의 피상성과 타락한 종교성을 수정해 가면서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이웃들을 바르게 사랑하는 삶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복된 간섭의 여정입니다.

박홍섭 – 말할 수 없는 영광

윤리학의 기초
도서 「윤리학의 기초」

종교를 도덕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 독일에서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종교적 주제는 형이상학의 이론적 지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도 자립성을 띤다는 주장을 성공적으로 주창했다. 그렇지만 슐라이어마허도 계속해서 윤리학을 토대학문으로 인정했으며, 그 토대 위에 역시 신학이 서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경건한 공동체라는 개념은 윤리학의 사회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02년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는 “윤리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자신의 논문에서, “윤리학이 상위의 학문이며 가장 원리적인 학문으로서 이 학문의 틀 안으로 종교학이 편입된다”는 입장이 근대적 발전의 특징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트뢸치를 이어서 트루츠 렌토르프(Trutz Rendtorff)도 근대를 “기독교의 윤리적 시대”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기독교를 교의학으로부터 파악하려는 입장과 대비되는데, 기독교를 교의학으로부터 파악하는 입장은 오로지 전근대적 역사에서만 타당성을 가진다고 렌토르프는 주장한다. 또한 그는 근대에는 교의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마저도 교의학이 윤리학을 위해서 가지는 기능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저자), 오성현(옮긴이) - 윤리학의 기초

피로교회를 넘어 필요교회로
도서 「피로교회를 넘어 필요교회로」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은 왜곡된 세상이 만든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부작용의 결과다. 만성이 된 고통은 회복도 오래 걸린다. 또 구조적이기 때문에 개인 문제로 생각하고 각자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성적인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이름의 고통은, 함께 인내하며 풀어야 할 공동과제다. 바로 이 지점에 교회 공동체의 사명이 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인 교회는 왜곡된 세상이 만드는 악한 구조에 대항하며 건강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공동체다. 이러한 건강한 구조는 악한 구조가 만들어 낸 시대적인 다양한 고통에 민감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곡된 세상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신앙 뒤에 감춰진 성공을 향한 무한욕망과 은밀하게 연결되어 드러난다. 탐심(무한욕망)은 곧 우상숭배다(골 3:5). 우상숭배는 기복신앙으로 나타난다. 성경에는 기복적 요소가 있다. 하나님은 여러 종류의 복(물질, 건강, 자녀, 문제해결, 범사에 잘 됨 등)을 주실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닌 ‘복’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램프의 요정처럼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건강, 성공, 물질, 풍요, 형통함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신앙목표라면 예배도 얼마든지 우상숭배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자기만족을 채울 수만 있다면 누구든, 무엇이든 우상으로 섬길 수 있다. 신앙은 얼마든지 자신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왜곡될 수 있다.

이연우 – 피로교회를 넘어 필요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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