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률 칼럼] 산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다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김종률 목사(삼무곡수도회 대표, 삼무곡자연예술학교 교장)

지난 가을, 삼무곡의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행을 할 때였다. 중청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외설악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는데 영~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그림자처럼 쫓아왔다. 관광버스에서나 들을 수 있음직한 트롯트메들리, 도대체 어떤 몰상식한 놈들이 신성한 산에까지 와서 유흥지의 놀이판을 벌인단 말인가?

일단은 이 짜증스러운 트롯트메들리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철계단을 걸었다. 하지만 벗어나려 애쓰면 애쓸수록 트롯트메들리는 더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정말 충분히 즐기고 싶었던 구간을 이까짓 트롯트메들리 따위로 '잡치게' 됐다 생각하니 더 약이 올랐다. '도대체 국립공운 관리공단 사람들은 뭘 하는거야?' 저런 것들 단속 않고....'

불만 속에서 걷다 보니 어느새 희운각 대피소에 당도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낭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커피라도 한 잔 끓여야겠다는 생각에 배낭을 열고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그때였다. 드디어 트롯트메들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배낭엔 무슨무슨 산악회 리본이 깃발처럼 펄럭였고, 맨앞의, 육순을 훨씬 넘긴 듯한 중년의 아저씨 뒤로 십여 명의 아줌마 아저씨 부대가 대피소 마당으로 들어섰다. 먼저 도착해 땀을 식히고 있던 등산객들이 누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뽕짝거리는 음악소리가 대피소 마당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쫓아가서 싫은 소리 한 마디 할 작정으로 버너에 불을 끄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순간 음악소리가 그쳤다. 나보다 성질이 더 급한 등산객이 이미 한바탕 훈계를 한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조용할 수가! 순식간에 설악산은 태고의 고요를 되찾은 것 같았다. 속이 다 시원해졌다.

사람들의 눈초리를 이기지 못한 트롯트메들리 부대는 내려놨던 배낭을 주섬주섬 다시 메고 민망한 듯 자리를 떠나갔다. 여기저기서 그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갔다.

"유원지에서 놀아야 할 사람들이 산에는 왜 온거야!""산악회 단체사람들은 국립공원에 출입을 금지시켜야 돼.""대청봉이 1년에 몇 센티미터씩 가라앉는다는데 저런 사람들 때문에 그런 거잖아!""하여튼 산에 오는 기본도 안 돼있는 사람들이네!"

나도 이들의 비난에 암묵적 동의를 보냈다. 커피를 한 잔 여유있게 마시고 다시 하산길에 올랐다. 깔딱고개를 다 내려오니 천불동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들려오는 건 물소리만이 아니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 트롯트메들리 가락이 물소리에 섞여 다시 들리는 게 아닌가? 나는 더 이상 산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며 트롯트메들리 가락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음악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서둘러 걸어 그들을 앞지를 심산으로 배낭을 들춰메고 부지런히 내려오는데 계곡이 제법 넓어진 자리에 아예 자리를 틀고 앉은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어제치고 머리를 감는가 하면 아줌마들은 바위에 앉아 라면을 끓이며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녹음기에서는 여전히 트롯트메들리가 뽕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나를 만나고자 찾아오는 너희들에게 자격을 묻지 않았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이는 그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산도 마찬가지다."

벼락 같은 주님의 음성. 아아, 엔도 슈사꾸는 온갖 오물과 타다 남은 시신이 둥둥 떠다니는 갠지스 강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던가? 아, 온갖 판단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한 나의 이 어리석음을 어찌할 것인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출처: 새가정 

#김종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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