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가 ‘새한글성경’을 출간했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다음 세대 젊은이들과 교회학교 학생들도 읽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상 용어와 문체의 현대화를 꾀한 게 특징이다.
성서공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 ‘새한글성경’을 처음 공개했다. 공회 측 설명에 의하면 젊은 세대를 고려해 성경 번역에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용어와 방식을 사용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어순과 어원까지 고려해 직역했다고 한다.
‘새한글성경’은 다음 세대와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친근하게 대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비신자들이 성경을 처음 접할 때 거부감이 덜하도록 접근성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위해 기존의 교회 전통어는 쉬운 말로 번역하고, 어려운 한자어는 괄호 안에 같이 넣어 의미도 명확히 한 건 매우 긍정적인 변화에 속한다.
구어체를 정리하면서 한 문장이 50자 내외 16어절 정도를 넘지 않게 한 점도 눈에 띈다. 이에 대해 공회 측은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세대가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했다는 설명이다. 또 원문의 문학 장르를 살려 원문의 다채로운 문체가 번역문에서도 드러나게 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장막은 ‘텐트’, 휘장은 ‘커튼’ 등 흔히 쓰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고 기근은 ‘굶주림’, 적신을 ‘헐벗음’으로 바꾸는 등 난해한 단어를 쉽게 풀었다. 또 ‘규빗’ 등 현재 쓰지 않는 도량형 등을 공식 통용되는 ‘미터’ 등으로 바꾼 것도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교회가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개역한글’ 성경을 개정해 지난 1998년에 나온 ‘개역개정판’ 성경이다. 가장 모범적인 한글 성경의 맥을 잇는 성경이란 점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에겐 성경의 표본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역개정판’ 성경도 기존 ‘개역한글’ 의 낡은 문체를 상당 부분 답습하고 여전히 몇몇 오역들이 수정되지 않는 등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내에서 ‘개역 개정판’ 성경을 고수하는 분위기는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이전에 한국교회와 가톨릭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와 그 후 나온 ‘표준 새번역’ 성경에 대한 거부감이 심화된 탓도 있다. 다양한 번역본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가 성경에 대한 선택권을 한층 좁게 만든 영향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성경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은 다양한 번역본의 시장 진입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성경 번역상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개역성경’만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작업이 진행되는 현실이 잘 말해준다.
그런 현실에서 젊은 세대들을 위한 읽기 쉬운 성경이 새롭게 번역돼 출판된 건 반가운 일이다. 디지털 세대를 겨냥했다고는 하나 일반 성도들이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기에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다만 이 성경이 한국교회에 보편적으로 활용되기엔 몇 가지 한계점이 있어 보인다. 일단 쉬운 용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가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게 사실이지만 성경이 지닌 권위와 무게감을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으로 받든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과거엔 성경 위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거나 겉표지에 얼룩이 묻어도 불경하게 여길 정도였다. 교회 주일예배시 대표 기도자가 “하옵소서. 원하옵나이다” 등 19세기에 쓰던 구어체를 여전히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새한글성경’에 아쉬운 점도 있다. 번역자의 주관이 본문에 자주 개입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시편에서 시인이 하는 기도와 혼잣말을 따로따로 명시해서 적었는데 굳이 이렇게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 성경을 소리 내 읽을 때 그 운율을 생각하지 않은 번역이란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눈으로 읽고 이해하기엔 더없이 좋지만, 낭독의 즐거움은 개역 성경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다.
이런 몇 가지를 제외하면 이번에 출판된 ‘새한글성경’은 장점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따로 주석을 찾아볼 필요가 없고, 초신자들의 진입 장벽인 낯설고 생경한 용어들이 익숙한 표현으로 대폭 바뀌었다는 점에서 젊은이들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구약 책임번역자인 박동현 교수(장신대 은퇴)는 “복음은 이 세상 모두를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익숙한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다”며 “해외동포, 북한 주민 등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 특히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고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했다.
중세 암흑기에 교황과 사제 등 교권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마르틴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 모두의 성경으로 돌려주었다. 그런 귀중한 성경이 오랜 세월 성도 가정에 방치돼 장식품화 하고 있는 요인은 아무래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는 번역상의 난제에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개선한 ‘새한글성경’ 출판을 계기로 성경을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