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동거하는 남녀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해 법적·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등록 동거혼’ 도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무리 저출산 문제가 시급한들 성 윤리가 무너진 유럽 국가에서 동성간 결합을 합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무분별하게 들여오려 한다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우리 사회에 닥친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전 국무위원과 부처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그 후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위가 내놓은 획기적 방안이 ‘등록 동거혼’이라는 것이다.
‘등록 동거혼’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시청에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기존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1990년대 말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에서 시작된 제도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유럽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서구의 ‘등록 동거혼’제도를 저출산위가 우리나라에 도입하려는 건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담스러워하는 데 착안한듯하다. 그래서 저출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니 동거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길이 열리면 자연히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것이란 논리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게 결혼이란 제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게 경제적인 부담과 자녀 양육이 짐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들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가볍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등 관계에 구속받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복잡한 결혼 대신 동거를 권장하면 아기를 많이 낳을 거라는 기대는 헛된 바람일 뿐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저출산위는 이달부터 ‘등록 동거혼’ 관련 행사 등을 열어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설 거라고 한다. 아마도 최근 불거진 배우 정우성 씨의 비혼 출산, 혼외자 논란을 계기로 여론몰이에 나서겠다는 심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외국에서까지 인구 절벽, 위기론이 거론된 나라의 중대사를 유명배우가 일으킨 혼외자 파문의 틈을 타 밀어붙이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저출산위의 이런 시도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저출산위가 모델로 삼은 제도가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PACS)이라는 점이다. 1999년에 프랑스에서 시행된 PACS의 골자는 미혼 성인 두 명이 시청에 신고만 하면 ‘동거 가족’으로 인정받아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 결혼 가족과 유사한 법적 혜택을 누리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PACS는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이 복잡한 법적 이혼 절차를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가 사회 문제화되자 그 대안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그러니까 남녀가 쉽게 만나고 또 쉽게 헤어지도록 국가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거 관계가 아닌 혼인 부부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구조다. 이혼 절차가 복잡해서 아기를 낳기를 꺼리는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동거인에게 부부와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하면 가족관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제도가 동성 부부를 인정하는 길에 양탄자를 깔아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위는 ‘등록 동거혼’에 동성 간의 동거는 제외한다고 했으나 동거 자체가 법적 혼인이 아닌 사이를 변칙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동성애자들이 왜 우리만 안 되냐고 항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게 된다.
정치권에서도 이 제도의 법적 근거를 위한 절차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국민의 힘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나라도 프랑스식 '등록 동거혼'(PACS)을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곧 법률안을 준비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계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저출산 비상사태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비혼 출산을 합법화할 게 아니라 결혼을 통한 건강한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 양육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거다. 괜히 얄팍한 수를 썼다가 가족제도가 붕괴하는 등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기공협)는 나경원 의원이 제안한 ‘등록동거혼제’를 규탄하면서 나 의원의 주장은 최근 불거진 배우 정우성 씨의 ‘혼외자 스캔들’에 영합한 것으로 동성간 결합을 위한 문호만 열어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공협은 성명에서 “포르노, 성매매, 사촌결혼, 마약, 동성결혼 등이 일찍부터 합법화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건강한 사회체제를 이루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 비율은 4.7%에 불과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유럽 국가 등에서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출산율을 핑계로 우리나라에도 도입하겠다는 주장은 정말 정신 나간 소리”라고 비판했다.
혼인이 전제되지 않은 남녀 간의 결합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로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혼인 외 출생과 자녀 양육이 활성화되면 법적 정상가족 규범은 해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 게 ‘프랑스의 PACS’인데 이를 그대로 도입하겠다는 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저출산위가 추진하는 이 기형적 제도는 처음엔 이성간 ‘등록 동거제’로 출발하겠지만 뒤이어 동성간 ‘등록 동거제’를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장차는 동성혼 합법화의 수순을 막을 길이 없게 된다.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는 정부에 치명상이 될 이런 구상은 국민 사이에 상처가 되기 전에 깨끗이 지우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