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가 HIV/AIDS 감염 예방과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2020년 HIV/AIDS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2020년 HIV/AIDS 신규 감염인은 2019년의 1,223명(내국인 1,006명, 외국인 217명)보다 16.9% 감소한 1,016명(내국인 818명, 외국인 198명)으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 매년 1,100명 이상 그리고 최근 2년간 1,200명 이상의 신규 감염이 기록되어 오다가 7년 만에 1,100명 아래로 떨어진 수치이다.
국제연합 산하 에이즈 전담기구인 UNAIDS는 2020년 전 세계 HIV 신규 감염자가 150만 명이라고 발표하였다.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던 1997년 이후 지속 감소하여 1997년 대비 52%, 2010년 대비 31% 감소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985년 HIV 감염자가 처음 발견된 이래 해마다 신규 감염 발생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2020년에 1997년, 2010년과 비교하여 각각 606%, 21.4% 증가하였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총 누적 감염인은 19,741명(내국인 17,403명)이며 14,538명의 내국인이 HIV 감염 또는 AIDS 상태로 지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2019년 11월에 발표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에서 국민의 건강 위협 및 전파 시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는 AIDS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방관리 대책이 요구되고 치료제 개발로 생존 감염인의 증가 및 고령화와 개방적 성문화 등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 감염의 감소는 반가운 소식인 듯 보인다.
• HIV 감염인: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에 감염된 사람, 즉 체내에 HIV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건강해 보이나 타인에게 전파력이 있으며 AIDS 환자로 이행되기 이전 단계에 있는 사람
•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 환자: HIV에 감염된 후 세포면역기능의 결함으로 인해 AIDS 판정 기준에 속하는 특정한 기회감염에 따른 질환이 발생한 사람 또는 CD4+ T 세포 수가 200/mm3 미만으로 감소되어 있는 사람
2020년 국내 HIV/AIDS 신규 감염 신고의 감소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연관성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HIV/AIDS 감염 관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진단율(감염자 중 진단자 비율)과 조기 진단 측면에서 보건당국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년 7월 질병관리청은 ‘최근 10년간 전국 보건소 HIV 선별검사 현황(2011~2020)’이라는 보고서에서 대표적인 HIV 선별검사기관인 보건소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수행한 연평균 HIV 선별검사 건수는 443,609건이었고 2020년 HIV 선별검사 건수는 178,653건으로 전년 대비 59.4% 급감했다고 발표하였다. 그 이유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전국 보건소의 HIV 진단실험실 운영이 축소 또는 중단된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관련하여 HIV/AIDS 신고현황에서 감염 신고기관 중 보건소 신고 건수(비율)를 살펴보면, 2011년 131명(13.7%), 2014년 264명(22.2%), 2017년 326명(27.4%), 2018년 382명(31.7%), 2019년 367명(30%)으로 증가세였다가 2020년에 166명(16.3%)으로 전년 대비 54.8%나 감소하였다. 신규 감염 신고 중 30%를 차지할 만큼 HIV 진단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던 보건소가 코로나19 대응에 밀려 HIV 선별검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 많은 수의 감염자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은 32개국 아프리카/아시아 국가의 502개 의료기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2020년에 시행한 첫 번째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HIV 검진은 41%, 진단과 치료는 37% 감소했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UNAIDS가 발표한 2020년 전 세계 HIV 진단율은 84%로 2019년의 81%보다 상승하였다.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영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HIV 진단율은 오히려 향상되었다는 사실에 보건당국은 경각심을 가지고 HIV 선별검사를 포함한 감염 관리 업무를 정상화해야 하겠다.
우리나라 HIV/AIDS 관리의 문제점, 낮은 진단율과 늦은 진단 시기
전 세계와 비교하여 우리나라 HIV/AIDS 감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규 감염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낮은 진단율과 진단이 늦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바이러스 전파뿐만 아니라 치료 성공률과 생존율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UNAIDS는 2020년에 HIV 진단율이 목표했던 90%에 근접한 84%까지 달성되었고 2025년까지의 목표치를 95%로 상향한다고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진단율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가 아직까지도 없는 실정으로 HIV 감염 진단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평가하고 보완해야 할 질병관리청이 이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의구심마저 생긴다.
2020년에 이와 관련된 국내 논문이 처음 발표되었는데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를 조사 분석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2015년 HIV 진단율은 58%로 추정되고 2020년까지 62.5%(총 감염인 20,839명, 미진단 감염인 7,809명)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이는 90%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며 전 세계 평균과 비교하면 낙제점 수준이다. 바꿔 말하면 국내에서 HIV에 감염된 사람 중 약 40%는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로 병이 악화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타인에게 전파시킬 위험성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논문에서 HIV 감염 시점부터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7년으로 조사되었다. HIV 감염 시부터 CD4+ T 세포 수가 200/mm3 미만으로 감소되거나 AIDS 증상이 나타나기까지의 잠복기가 5~10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7년이라는 기간은 HIV 감염인 중 상당수가 병이 꽤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된다는 것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논문 결과에서도 2007년부터 2015년까지 HIV 감염이 확인된 7,033명 중에 41.2%가 AIDS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진단이 늦게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1년~2020년 HIV/AIDS 신고현황 연보를 분석하면, 진단 시 조사된 CD4+ T 세포 수가 200/mm3 미만은 26~49%, 350/mm3 미만은 63~74%로 신규 감염인 중 다수가 AIDS 또는 면역 저하 상태에서 진단되었다.
진단율 및 조기 진단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발적 검사가 많이 시행되어야 하지만 최근 10년간 신규 감염인의 자발적 검사 비율은 평균 17.5%(8~27%)에 불과하고 2018년과 2019년에 그나마 27%까지 증가하였다가 2020년에는 20.4%로 감소하였다. 이 또한 코로나19 영향으로 보건소의 선별검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발적 검사 비율 자체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치료 성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01년과 2015년 사이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시작한 국내 HIV/AIDS 환자의 생존율을 조사한 연구에서 최근 ART 시대에 우수한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생존율은 향상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를 분석했을 때, 2019년에 사망원인이 AIDS인 경우 사망 시 평균 나이가 57세였다. 1995년에 AIDS로 인한 사망자의 평균 나이가 33세였던 것보다 많이 늘었지만 2009년에 처음 50세를 넘어선 이후 증가폭이 크지 않고 2019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인 83.3세와 비교하면 26세나 짧다. 그리고 만성질환인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한 사망자 중 각각 83%와 95%가 65세 이상의 나이에 사망한 반면 AIDS로 인한 사망자의 74%는 64세 이하에 사망하였다.
HIV/AIDS의 조기 진단과 지속적 치료가 확보된다면 예측 기대수명이 63~78세까지 이른다는 국외 연구 결과와 실제 길어진 평균 수명,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발전된 치료제 등이 근거로 제시되면서, HIV/AIDS는 공포와 죽음의 전염병이라는 오명을 벗고 완치되진 않지만 관리 가능하고 오래 살 수 있는 만성질환 중 하나로 홍보되고 그 인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일반이이나 만성질환자에 비교하여 HIV/AIDS 환자의 평균 수명이 매우 짧고 발전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생존율이 향상되지 않고 있다는 위험성과 만성질환자는 주로 50대 이상인 반면 HIV는 대부분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동성 또는 양성 간 성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특이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기관이나 여러 매체들을 통하여 HIV/AIDS가 흔한 만성질환과 같다거나 심각한 질병이 아닌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병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게 하여 국민건강 보호와 증진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낮은 진단율, 높은 후기 진단 비율 그리고 신규 감염인의 증가가 특징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자체를 차단하기 위하여 HIV의 주요 감염 경로가 동성 또는 양성 간 성접촉이며 가장 위험한 행동은 항문성교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조기 진단 및 진단율 향상을 위해 남성동성애자를 포함한 감염취약집단(고위험군) 검사를 활성화하고 그들이 자발적 검사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HIV/AIDS 진단과 감염 관리에 더욱 신경써야
2020년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코로나19 영향 아래 살고 있고 코로나19 확진자는 작년보다 증가하여 보건소 업무가 코로나19 대응에 더욱 치중되어 있을 것이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HIV/AIDS 신고현황은 9월 11일(37주차)까지 498명으로 기록되어 작년 37주차보다 5.7%(528명) 감소하였고 코로나19 이전 2015~2019년 동기간 5년 평균 683명(664~701명)보다 27.1% 감소하였다. 이는 HIV 감염 자체의 감소가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보건당국이 HIV/AIDS 예방관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2021년 9월 22일 기준 국내 및 해외유입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90,983명, 누적 사망자는 2,419명 그리고 치명률(누적사망자수/누적확진자수×100)은 0.83%이다. 코로나19의 경우 확진자는 대부분 20~60대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 사망자는 70대 이상이 77.7%을 차지하여 고령층에서 치명률이 매우 높다. 반면 HIV/AIDS의 치명률은 2020년에 16.2%(2,818명/17,403명)으로 가장 높았던 2000년 22.3%(286명/1280명)보다 감소했으나 코로나19보다 19.5배 높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AIDS로 인한 사망자 중 74%는 64세 이하의 연령에서 사망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질병관리청과 보건소를 포함한 정부보건기관이 당연히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해야 하지만 HIV/AIDS가 코로나19와 비교하여 병의 경중과 사회경제적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HIV 감염은 주로 10~30대 젊은 연령에서 발생되어 이른 나이부터 평생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고 약물 부작용이나 동반질환으로 인한 고통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ART에도 불구하고 HIV/AIDS 환자의 생존율은 개선되지 않았으며 AIDS 환자의 평균 수명은 일반 기대수명보다 26세가량 짧다. 또한 수천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미진단 감염인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로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으며, 생존 감염인의 증가에 따른 막대한 치료비와 지원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중대한 이유로 HIV/AIDS 감염 관리가 코로나19 때문에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또한 UNAIDS에 의하면 HIV 감염자는 HIV 미감염자보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더 심각한 결과와 더 많은 동반질환을 경험하며,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행한 연구는 HIV 감염자의 코로나19 사망 위험은 일반 인구보다 2배 높다고 밝혔다. 따라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천 명 가까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보건당국은 진단되지 않은 HIV 감염인을 더욱 조기에 발견하여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도록 돕고 빠르게 HIV/AIDS 치료기관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치우쳐서 일어나고 있는 HIV/AIDS 예방관리 소홀과 공백 그리고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악영향들에 대한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하며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 마련과 충실한 시행이 요구된다.
임수현(비뇨기과 전문의, 한국성과학연구협회 부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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