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사제 주낙현 신부가 28일 성 이레네우스 축일을 맞아 이레네우스의 업적을 되새기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주 신부는 "실제로 이레네우스 성인을 잘 알거나 기억하는 분이 별로 없다"면서 "그는 예수님의 직접 제자의 제자였던 폴리캅 성인의 제자였으니까 아무래도 예수님의 제자 족보에서 손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주 신부는 "그러나 우리는 이 성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우리가 매 주일 외우는 위대한 신앙고백인 니케아 신경의 여러 문장이 이분의 글에서 따온 것인데도 이 성인의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아니, 우리는 이분의 생소한 이름뿐만 아니라, 이분의 가르침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 탓일까? 이 성인이 그토록 싸웠던 이단들, 잘못된 가르침이 지금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으로 버젓이 행세한다"고 전했다.
특히 세속 이원론, 이분법적 시각이 만연한 오늘의 교회 현장의 가르침에 대해 "세상을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으로 나누고, 모든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나누고, 삶의 미래를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는 일이 횡행하다"고 했다.
아울러 "완전한 하느님이 불완전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니, 이 불완전한 세상은 실제로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숱하다. 불완전하고 악이 가득하고 육적인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내적인 세계의 평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주 신부는 "게다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매우 한정된 사람에게만 있고, 세상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로 알 수 없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라 자처한다"고 했으며 "우리의 삶에 담긴 갖가지 고통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은 그저 모두 허상일 뿐이고, 우리는 그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지식과 진리만을 깨달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도 했다.
주 신부는 "이런 일이 횡행하니 이런 사고방식을 철저히 반대했던 이레네우스 성인의 가르침을 우리는 잊고 산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옹의 교부 성 이레네우스는 이처럼 개인적이고 영적 지혜를 구원의 방편으로 삼았던 영지주의자들을 철저히 반대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개인과 공동체, 영적 지혜와 일상의 경험, 영과 육, 그리고 성과 속을 철저히 구분했던 영지주의자들은 오늘 우리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성찬례를 드리며 떡과 잔을 나누는 일을 두고 '세상의 썩어질 물질을 먹는 헛된 짓'이라고 조롱하고 멸시했다. 대신에 자신들이 수련하여 얻은 영적 지식이 영원한 것이라 주장했다.
주 신부는 "그러나 이레네우스 성인은 성찬례가 육과 영의 결합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가르쳤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신비가 이루어지는 '성체'의 사건은 썩어 없어지지 않으며, 이야말로 부활에 대한 희망의 사건이라고 말했다"며 "이 만남과 변화의 신비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성찬례이며, 이 성찬례 신비의 경험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논리와 선언을 세운다고 반박했다"고 전했다.
또 "성인은 무엇보다도, 세상의 구원은 이미 창조 때에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 안에 이미 구원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쳤다. 모든 피조물의 구원은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 "참 좋다"하며 던지신 감탄사에 이미 담겨있노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그 창조 안에서 조금씩 유아기를 벗어나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진화의 과정에 있노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성인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것, 느낄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우리의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다"며 "우리의 이성과 기억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육신도, 우리의 영혼도,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손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주 신부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살다가 우리와 똑같이 밥을 나누고 마시고, 웃고 울고, 즐거워하고 화내고, 결국에는 고통을 당하다 죽었던 이유도, 우리의 생로병사 그 자체가 여전히 하느님의 축복 안에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일이라고 가르쳤다"며 "결국,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모두 창조 때의 아름다운 모습, 참 좋은 모습으로 회복시켜주신다고 가르쳤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키워주신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가르쳤다. "온전하게 살아있는 인간이야 말로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성인은 선언했다"고 전했다.